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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가장 슬프게 하는 건 집에서 아빠라고 부를 사람이 없어서도, 아빠의 품이 그리워서도 아니다.
몇 달만에 보는 아빠와의 만남이 어색하게만 느껴지는 것 그것이 나를 가장 마음 아프게 한다.
가끔 보는 우리 아빠는 내가 말을 하면 다른 말로 넘기거나 반응이 시큰둥하다. 서서히 자라며 나도 그런 아빠에 대해 무덤덤해졌고 대화는 자연스레 줄었다.
몇일 전 엄마가 빨래를 개다 말고 일상처럼 말을 꺼내신다. 늘 그랬듯 나는 티비 리모콘을 들고 건성스레 대답하던 중 엄마는 티비 소리가 크다며 " 네 아빠도 귀가 안들려서 꼭 이렇게 크게 듣지 않니"
가끔은 상대방이 열 번의 신호를 보내주어도 모를 때가 있다. 그만큼 내가 그사람에게 얼마나 무심했었나 알 수 있게 되기도 한다.
아빠는 그러고보면 항상 내가 "아빠" 하고 입을 열면
귀는 내 쪽에 대고 내 입모양을 가만히 응시했더랬다.
나를 데리러 온 웅천역 그 기차역에서, 차를 타고 오는 날이면 옆에 앉은 내 입을 볼 수 없어 아빠는 혼잣말을 했더랬다. 아빠는 나와 떨어져있던 십삼년의 그 시간동안 그렇게 변해있었다.
내 목소리를 보려하는 아빠, 혼잣말만 하는 우리 아빠.
푸세식 화장실로 가는 길 무섭다며 어두운 마당길 아빠 뒤를 따라 졸졸 걸었다. 어둠에 가려 아빠 셔츠를 꼭 붙잡고, 올려다본 아빠의 등이 여전히 커보여서 남은 손으로
눈물을 훔치며 화장실로 도망치듯 들어가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