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의 마음 속 저울을 보려했다.
그가 105g을 요구하는 날엔, 나는 그 근사치에 도달할 때까지 빼고 더하고를 반복하며 105g을 만들어냈다. 그런 사람이 내게 있었다. 나도, 아니 사실은 모든 사람이 마음에 그런 저울 하나쯤은 있을텐데 그가 알아채는 날이 오긴 할지 그도 자신의 마음을 내 저울에 담아 조각낼 날이 오긴 할 것일지. 물론 뻔한 대답이 건너편에서 들려오네. 보지 못한다면 무슨 소용이 있어, 보지 못한다는 것은 없다는 의미나 다름 없지 않어? 그래서 나도 숨겨버렸다. 그리고 속 시원하게 없는 척 해버렸다. 넌 나와 정말 잘 맞아. 응, 나도 그렇게 생각해. 수도 없이 저울질 해대며 빚어내는 내 마음인지도 모르고, 그래 나도 그렇게 생각해 하고 무미건조하게 대답해버리었다. 속 시원하게. 그렇다고 치부해버리자. 예수님도 우리들의 죄를 위해서 대신 십자가에 못 박히시며 희생이란 걸 하셨는데. 하물며 사랑하는 너 하나를 위해 내 저울 하나 없애는건 쉬운 일이지. 정확히는 너랑 같은105g으로 맞추는 일 말이다. 근데 말이야. 못 박히는 그 고통, 나 기독교 신자일 때 조차도 가늠 할 수 없을 아픔이란건 알았지만. 지금도 그 고통 이루 말할 수 없다는 거 알지만. 어리석은 나는, 바느질 하다 콕하고 쑤시는 그 바늘 마저도 아픈 어리석은 나는 말이야. 105g으로 위장하는 날엔 이 모든 아픔을 포용할 정도로 많이 아팠단다. 그 날의 나는 많이 아파서 가슴 언저리를 툭 치며 펑펑 눈물을 쏟아내리었단다. 내가 많이 어리석니. 그래도 알아줬음 좋겠는데, 너 없는 날 많이 비워내 또 다시 0으로 만드는 나를.
어느날은 무서워서 손톱을 연신 깨물었다. 알아줬음 하는 그가, 알아버릴까 무서워 말이다.
뭐야. 너. 105g이 아니였잖아. 우린 잘 맞는 사람인 줄 알았는데. 너. 나와 달랐잖아.
아니야. 부정하지마. 아니야. 우린 같지 않아. 아니야. 다르다니 넌 위선자야. 아니야. 아니 넌 날 희롱했어.아니야. 그만하자.
오스트리아에 해발 3000m가 되는 파이브 핑거스에 올라간 적이 있었다. 그 곳은 조용하다 못해 적막하고 고요하다. 라는 말이 더 잘어울릴 정도로, 무의 상태였다
아무 것도 들리지 않고 아무도 없어, 불안도 없고 그 곳엔 나만이 존재하는. 지하창고 깊숙이 숨겨논 먼지 쌓인 내 저울 찾아 내 옆에 두고.
눈금 한번 쳐다보며 꿈뻑이다 천천히 눈을 감았다.
어머니의 따뜻한 양수가 가득차있다. 손가락 하나 발가락 하나 차근차근 움직이며 양수를 가로지른다. 이내 합쳐진다. 그리고 다시 나를 감싼다. 무의 상태, 삐이-소리 조차 없는 그 곳에선 양수의 찰랑이는 소리만이 내 귀를 간지럽힐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