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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른한 오후를 보낸다쓰다 2015. 9. 15. 21:27
두 손바닥을 합쳐도 조금 더 커다랗다. 그래서 반으로 접고 약간 둥그렇게 모아 손바닥으로 쥐어본다. 아슬아슬 손바닥을 튈 듯한 종이들이. 마치 튀어 오르는 검은 색 활자 같다. 눈이 좋지 않은 탓에 깊게 코를 박으니, 오래된 종이냄새가 나는 듯하다. 인쇄된 종이에서 괜스레 스며든 작가의 체취가 퍽 다정하다. 구월의 햇살이 나뭇잎 사이로 반 틈 드리운다. 빛은 문장의 몇 글자를 밝혀온다. ‘내게 효과가 있는 다만 하나의 강장제는 따스한 햇볕이요, ‘토닉’이 되는 것은 흙냄새이다.’ 사이사이 나열된 문장들이, 일광욕을 즐기듯/ 드리운 햇살아래 종이를 바닥 삼아 누워있다. 나른하다. 그들은 나른한 오후를 보낸다. 나도 따라, 엄지로 한 자 한자. 어루만져 본다, 나도 따라, 그들의 옆에 누워본다. 나도 따라, 나른한 오후를 보낸다.
9월 15일 화요일, 오후 9: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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