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찻장에서 먼지 쌓인 잔과 잔 받침대를 꺼낸다.쓰다 2015. 10. 16. 02:27
찻장에서 먼지 쌓인 잔과 잔 받침대를 꺼낸다. 물로 살짝 먼지를 씻겨낸다. 부엌에서 나와 네다리를 가진 탁자에 조심스레 올려놓는다. 적막 속에 덜그럭 소리가 울려 퍼진다. 오래도록 그 자리에 가구처럼 있는 커피포트. 물을 가득 담고는 on을 누른다. 물이 끓기까지 잠시 시간이 있으니 여유롭게 그렇게. 작년 이맘때쯤 집들이 선물로 받았던 티백을 찾는다. 서랍을 몇 번 뒤적이다, 책상 위에 놓인 상자가 유독 눈에 띈다. 반신반의한 마음으로 상자를 열어보니 역시나. 종이봉투에 싸여진 티백이 흐릿하게 보인다. 부시럭-. 하나를 꺼내 실과 종이를 살짝 뜯곤 덜그럭 잔에-10분전부터 붙여진 잔의 이름- 미끄러지듯 넣는다. 때마침 커피포트의 수증기가 천천히 올라온다. Off 보글보글. 혹시라도 실수할까 싶어 손잡이를 조심 잡고 천천히. 차를 우리 듯 그 옛날 다도를 하는 여성처럼 천천히 티백을 우려낸다. 잔 끝에서부터 엄지손톱만큼의 여유를 두어 마지막 한방울을 톡 떨어뜨린다. 실을 잡고 덤벙-. 그렇게 몇 번을 만지작 거리다가, 뜨거운 스팀기가 팍팍 내품기에. 혀의 안위를 걱정하며 노트북을 부여잡고 글을 몇 번 끄적인다. 가자미 눈질로 시계를 바라보니 어느덧 지나간 15분. 맹해진 색감. 조심스레 닿은 입술과. 살짝 대본 혀와. 액체가 닿기도 전에 코끝으로 전해져오는 깊은 향. 그와 무섭게 혀에서 느껴지는 씁쓸한 얼그레이의 맛, 그렇게 식은 얼그레이를 덜그럭 잔으로 조금씩 조금씩. 나누어 마셨다. 그런 새벽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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