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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악인 / 요시다 슈이치
    읽다 2019. 2. 21. 10:07

    요즘 내 삶의 1/3이 책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지하철에서 왕래하는 시간, 자기 전, 이른 아침에는 꼭 책을 끼고 다닌다. 

    오늘은 일 가는 길에 문득 손이 허전해서 봤더니 책을 그만 집에 놓고 와서 아쉬움을 핸드폰으로 달랬다.

    어렸을땐 무언가 얻으려고 읽으려 했다면 지금은 말그대로 그냥 취미일뿐이다. 재밌으니 읽고, 궁금하니 후기도 찾아보고 그러다보면 내 생각을 정리하고 싶어져

    글을 쓰게 된다. 그리고 책의 가장 좋아하는 부분은 가장 끝에 놓여진 옮긴이의 말이다. 원작을 닳도록 읽고 한자 한자 분석하며 얼마나 고민하였을까.

    그런 그들이 쓰는 후기는 어느 누구보다 남다를 것이다. 그래서 나는 그 부분을 참 좋아한다. 그리고 그들이 얼마나 이 글을 사랑하는지, 몸소 느껴진다.

    그러니 나에게는 그 후기까지가 이 소설의 완전한 끝맺음이라고도 할 수 있겠다. 


    p39

    마코와 둘이 있을 때는 자기가 주인공이 될 수 있지만, 요시노와 단 둘이 있으면 마치 짝퉁 명품을 몸에 두른 듯한 꺼림칙한 기분이 들었다. 

    p91

    마스오 게이고라는 남자가 있는데도 만남 사이트에서 알게 된 남자와 처음 만난 날 그런 짓을 했다는 요시노를 마음 깊은 곳에서 천박한 여자라고

    멸시했다. 그러나 멸시하는 마음이 들면 들수록 자신이 혹시 그런 여자가 되고 싶어 하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에 불안해졌다.


    p165

    진실을 진실로 전달하는 게 이렇게도 힘든 일인지는 몰랐다. 그럴바에는 차라리 거짓말을 지어내는 게 훨씬 편할 것 같다고 하야시는 생각했다.


    p245

    그의 표정은 흡사 야단맞을 걸 뻔히 알면서도 장난감을 사달라고 졸라대는 아이 같았다

     

    p260

    그저 막연하게 미쓰요는 참 욕심 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 미쓰요의 감춰진 이면이랄까, 그때까지 몰랐던 미쓰요의 욕구 같은게 전해져서 슬펐다고

    해야 하나, 가여웠다고 해야 하나


    p268

    순식간에 발아래로 살을 에는 듯한 매서운 밤공기가 스며들었다.


    p271

    요마스오는 문득 '이런 여자가 남자한테 살해당하겠지'하는 생각이 들었다. 정말이지 불현듯 그런 생각이 들었다.

    이런 여자의 '이런'이 '어떤'것인지 설명할 수 는 없지만, 분명 '이런'여자가 어느 순간 남자의 분노를 사서 허망하게 죽임을 당할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p277

    대학생 시절 테니스 동아리 여자 선배가 "하야시는 다른 사람을 똑바로 쳐다보잖아. 그래서 그런지 몰라도, 같이 있으면 왠지 내 속을 훤히 

    들여다보는 것 같은 느낌이 들어" 라는 말을 한 적이 있습니다. 별 대수로울 것도 없는 말이지만, 신기하게도 그 말이 마치 제 버팀목처럼 느껴졌어요.


    p363

    쓰루다는 마쓰세 고개에서 살해당한 여자가 마스오에게 보낸 문자가 어떤 내용인지 남자들의 표정만으로도 짐작할 수 있었다. 마치 죽은 여자의 몸이 남자들의

    손에서 손으로 옮겨지는 것 같았다.


    콩트. 쓰루다는 자기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손에는 죽은 여자가 보낸 문자가 있었다. 읽고 싶지 않았다. 


    p406

    요리코가 "엄마가 곁에 있었잖아.. ㄷㅐ체 어떻게 키웠기에 그런 인간을 만들어!"라고 퍼부었다. 

    "어쩄든 그 애가 나한테 도망쳐올 리는 없으니까 경찰한테 그렇게 말해요. 그 앤 돈 뜯을 때나 찾아온다고. 내가 어렵게 사는 거 뻔히 알면서,

    그런 줄 알면서 천 엔, 2천 엔 뜯어갔다고!"


    p417

    갖고 싶은 책도 cd도 없었다. 새해가 밝았는데도 가고 싶은 곳도, 만나고 싶은 사람도 없었다.


    p439

    한 인간이 이 세상에서 사라지는 것은 피라미드 꼭대기의 돌이 없어지는 게 아니라, 밑변의 돌 한 개가 없어지는 거로구나 하는. 


    p450

    "뭐가 그리 재밌나"라고 요시가 물었다. 진심으로 물어보고 싶었다. 마스오가 한 발짝 뒤로 물러섰다.

    "그렇게 살면 안돼."

    무심코 그런 말이 흘러나왔다.

    "... 그렇게 다른 사람이나 비웃으며 살면 되겠어?"


    p454

    유이치. 도망치면 안 된다. 두렵겠지만, 도망치면 안 돼. 도망쳐봐야 변하는 건 아무것도 없어. 도망쳐봐야 아무도 도와주지 않아.

     

    p466

    그런데 그 사람, 제 예상과는 달리 "원치 않는 돈을 뜯어내는 것도 괴로워"라는 거예요. 그래서 제가 "그럼 안 뜯어내면 되 잖아"라며 웃었어요.

    그랬더니 그 사람, 잠시 생각에 잠기더니 "그렇지만 양쪽 다 피해자가 되고 싶어하니까"라고 하더라고요.


    +)

    p477

    평범한 사람들의 심성과 행위를 통해 인간 내부에 숨겨진 또 다른 인간을 탐색하는 과정을 밟음으로써 보편적 의미를 부여해가는 것이다.


    미쓰요를 통해 어쩌면 악의 근원이라 할 수 있을 외로움과 진정한 사랑에 대한 갈구를 표현한다. 희망도 없고 필요로 하는 사람도 없이 그저 무의미한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현실에서 벗어나기 위해 유이치와 미쓰요는 누군가에게 문자를 보내고 만나고 서로에게서 자신의 모습을 발견한다. 



    작가는 요시다 슈이치. 열대어를 재밌게 읽었던 기억에 다시금 집어들었다. 그리고 이번 소설을 통해 더욱이 확실히 했다

    그의 소설을 꼭 다 읽어보아야겠다고! 

    처음에는 추리소설 비슷하게 살인사건이 등장해서 아 역시나 이런 소설이구나 싶었는데, 전혀 그런 소설이 아니였다.

    분노에서도 그랬지만 인간의 내면을 제대로 해체한다고 해야하나? 완전히 분리해서 보여주는 느낌이랄까. 하여간 조금 불쾌하기도 했는데 그건 아마 내 아주 깊고도 

    보여주고 싶지 않은 모습을 보았기 때문이겠지. 읽으면서 너무 많은 것을 느꼈다. 전에도 이런 비슷한 느낌을 받은 일본 소설이 있었는데.

    일본에 현실태를 꼬집는 부분이 꽤나 있다. 다들 하루벌어 하루먹고 살고 지갑엔 몇천엔 밖에 없지만 과시용으로 사는 좋은 차 좋은 지갑, 친구들에게 보여주는 허세.

    하루하루 무의미하게 보내며 공장의 부속품처럼 똑같은 하루. 무엇이 희망일지 모를 어제 오늘. 그리고 똑같을 내일. 무기력증 혹은 우울증 같은 것들.

    외로움. 만남사이트에서 만나는 사람들과 가벼운 하룻밤이라던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해서 진정한 사랑을 갈구하는 이들. 결국은 모두 외로운거겠지.

    사실은 이런 글들을 읽을때면, 너무나 비슷한 우리나라의 상황이 겹쳐보이면서. 동시에 내 얼굴이 보인다. 혹시나 나도 그렇게 살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에 휩싸이는 

    것이다. 모두 한때는 어릴 적 큰 꿈을 안고 사는 사람들 아니였겠는가, 그러니 지나가는 시간에 어느새 강물에 떠밀리듯 되어버린 지금 내 자신의 모습에

    체념해버릴 수 밖에 없는것일지도 모른다. 나도 어느새 그런 무기력증에 도달해버리면 어떨까. 괜스레 한기가 서린다. 

    어느 이유도 살인을 정당화할 수는 없겠지. 범인이 나쁘지 않다고 말하고 싶진 않다. 다만 살인을 저지르지 않고도 그만한 죄를 저지르며 

    죄의식 따위 없는 무수히 많은 사람들에 초점을 맞추고 싶었다. 자신을 좋아했던 여자를 한밤 중에 발로 차며 내팽개치고는 그날 그녀가 죽은 것에 대해

    조금의 우울은 커녕 자랑거리 삼아 말하는 사람. 저런 여자가 남자들한테 죽음을 당하지 않을까 하고 생각하는 사람.

    그런 그를 우상시하는 친구들. 죽어버린 딸의 아버지, 그 왜소한 몸으로 할 수 있는 것이라곤 그렇게 살면 안돼. 

    그 말 뿐이었다. 결국 모두들 피해자가 되고 싶은거니까. 각자는 누군가에게 모두 악인일 수도 있고 혹은 아닐 수도 있다. 

    인간의 감정이 얼마나 다양할 수 있는가 내 내면에 얼마나 많은 모습들이 있었나, 알 수 있었던 소설. 객관적인 이야기를 던져 읽는 내내, 내가 범인을 

    비판할 수 있을까. 세상에(혹은 인간의) 수많은 문제들의 결정체로 일어나버린 한 사건에 대해 끊임없이 고민해보았던 것 같다.

    (살해당한 여자에 대해서는 얘기하지 않는 편이 좋겠다 생각했다. 외로움에 이 사람 저 사람 만나는건 그 사람 사생활이고, 그 것이 어느 방향이든 

    살해당할 충분한 이유가 될 수는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여기에 정당성을 부여하면 꼭 요즘 일어난 사건들처럼 니가 짧은 치마를 입었으니 내가 강간한거잖아

    와도 같은 일과 다를바 없다고 느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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