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다
-
사각이 난 케이스가 걷기 시작한다쓰다 2016. 4. 4. 01:15
낯선 것들은 낯선 감정들을 불러일으키는데 이것은 매우 좋은 징조이다. 익숙함에겐 나태함 뿐. 뒷통수를 쎄게 맞아야 열이 받더라도 혹이 생긴다는 의미이다. 혹부리 영감에게 혹이 새 이야기를 만들었듯. 우리에게 새 이야기를 존재하게 하는 것은 일련의 낯선것들이다. 내가 원에 발 한쪽 담군다고 비웃지 말길 바란다. 엿보는게 어떠한가. 구멍이 생긴 균열 그 틈 사이로 눈구녕 비집고 들어서는게 찌질하던가. 벽돌들아. 다시 돌아가자. 다시 벽돌들아. 돌아가자. 잔해가 되어보자. 언어들아 부싀어보자. 색깔들아. 네모 안에 네모 밖에 모든 것들아. 잔해를 만들어보자. 안과 밖의 경계가 투명해질 때, 이내 밖이 안이 되어버릴때, 안은 밖을 먹고 밖은 안이 되어버리는. 1이 사라지는 동시에 1이 되어버리는. 사각형의 세계..
-
첫 눈쓰다 2015. 11. 27. 03:48
마침표없이 끝난 밤은 갑작스러운 아침으로 시작된다 번쩍하고 뜨인 눈보다도, 몸이 먼저 반응하는 것은 필히 겨울이 왔음을 온몸으로 느꼈기 때문일 것이다. 긴장한 근육들은 이내 움츠려지고 누에고치마냥 등을 구부린 채 이불 속을 파고든다. 하지만 알람은 얄밉게도 울린다. 겨울은 거창한 인사를 보내준다. 괜스레 설레진 기분에 옷에 다닥 다닥 쌓여가는 눈송이를 털어보았다 차가운 기운이 스쳤다. 바람이 스치는 볼언저리는 발갛게 발갛게 물들고 내 마음도 이에따라. 겨울은 항상 나의 계절이었다 내 생일이 있었고 눈이 있었고 크리스마스가 있었고 가족이 있었다 겨울에 우린 함께였다. 휘날리는 눈보라를 걸으며, 우린 함께였다.
-
나는 나를 보았다쓰다 2015. 11. 25. 03:32
초등학생때인가 중학생때인가. 어쨌든 컴퓨터수업을 들었을 때의 이야기다-기억을 특히나 그기억을 거기까지 더듬을 수 있음에 놀랐다- 항상 수업시간엔 한컴타자를 켜서 타자치는 연습을 했는데, 나는 이 시간을 매우 좋아했다. 워낙 타자치는 걸 좋아하기도 했고 따분한 수업 중에 유일한 오락 느낌이었으니까. 들어가면 여러 글들을 선택할 수 있었는데 내가 항상 쳤던 건 윤동주 시인의 별 헤는 밤이었다 이유는 잘 모르겠지만 아마 그걸 쓰면 타자가 항상 빠르게 나왔던 것 같은 이유였을거다. 왜인지 모르게 둥글둥글한 느낌의 글자들 100번도 이상 쳤을 별 헤는 밤 나중에는 보지 않아도 손이 저절로 움직이더랬다. 무슨 내용인지는 몰랐다 그땐. 그것은 내게는 글이라기 보단 한자 한자의 글자에 불과했다 그냥 나에겐 타자연습하기..
-
내 앞에 보이는 캔버스 그림은쓰다 2015. 11. 22. 00:53
붓 끝에 물을 조금 묻히고 물감을 휘익비벼 위에서부터 아래로 쭉 1을 긋는다. 그렇게 여러번 다른 색으로 쭉쭉 그어나간다. 어느새 그림은 그 끝의 경계가 모호해질 정도로 불분명한 형태가 되어갔다. 오직 감각에만 열중하며 그렸던 그림은 묘하게 기억과 닮은 구석이 있었다 처음과 끝이 흐릿해진 나의 기억들과 어디서부터 어디까지가 진짜이고 가짜일지 모를 일들. 과 처음1을 그었던 그때로 다시 돌이킬 수 없는 것은, 캔버스는 이미 물들었고 더이상 내가 만든 기억들은 내가 만질 수 없는 것이 되어버린. 나는 이 그림을 잔상이라고 불렀다.
-
과제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 맥주를 샀다쓰다 2015. 11. 22. 00:43
며칠째 잠을 잔건지 만건지도 모를 쪽잠으로 살아가고 있다. 매일 매일 입버릇처럼 친구들과 내뱉는 말은 "종강얼른했음좋겠다" 라거나 "자고싶다"라거나 어쨌든 오늘도 그런 날이었다. 정확히는 오늘의 아침까지 조모임을 마치고 쌀쌀한 아침공기맡으며 그렇게 집으로 귀가. 씻을 겨를도 없이 든 잠에, 다시금 시끄럽게 울려대는 알람과 초과한 시간에 허겁지겁 눌러쓴모자. 어김없이 시작되는 알바. 끝나자마자 몇십분 잠을 자고 조모임을 가고. 서로의 웃긴 얘기도 하고, 오가는 의견으로 글을 태우고 시간을 채우고. 그러다가 다시 밤이 되어 집으로 돌아오는 그길. 집 앞까지 오다 괜스레 방금 지나친 편의점이 아른거려 발걸음을 되돌린다. 배가 고프니 도시락이라도 먹을겸 간 편의점에서 한바퀴를 뺑두르다 맥주한캔과 초코과자한봉지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