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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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쓰다 2016. 6. 15. 00:28
보이지 않는 허상을 믿는다. 눈 앞에 보이는 하나의 세상을 향해 눈을 감으니 보이는 건 열의 세상. 스무개의 세상.허상 속 들려오는 잔잔함은 더이상 허상이 아니게 된다. 작년 나는 아름다운 포장지 속에 역겨운 토사물을 숨기고 있었다. 그리고 당신을 향해 내밀었다. 당신이 보지 못한 그 안에 모든 것은 결국 지금에서야 벗겨낸다. 다시 내손으로. 그리고 가득한 토사물이 반겨준다. 그 해에 포장지는 내 고무장갑이었고, 토사물은 남의 것이었고. 엄지와 검지로 은폐해버리고 싶은 것들. 그 해에 고무장갑을 지금에서야 벗겨내고. 토사물이 왜인지 익숙해져버린 것은 그것이 나의 것이 되어버린 현재이기 때문이다. 덮고 다시 드러내고 덮고 다시 드러내고 누가 볼새라. 내가 볼까 싶어. 해가 뜨는 아침이면 덮어두다 문을 닫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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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첩 정리쓰다 2016. 5. 26. 12:21
내가 사진첩을 정리하게 되는 순간은 두 가지이다. 정말 심심한데 할 것이 없거나. 정말 심심한데 마침 용량이 꽉 찼거나. 정말 심심한데 데이터를 다 썼거나. 특히나 마지막의 이유로 사진첩을 정리하게 되는 순간이 80%이상을 차지한다고 보면 된다. 그래서 오늘 오월 이십일일. 다음달을 십일 정도 앞둔, 지금. 3번째의 이유로 집을 가는 버스 안에서 사진첩을 정리했다. 별반 정리 랄것도 없는게, 지우기가 아까워 사진을 본 뒤 추억하는 것이 전부이다. 오늘도 역시 그런 날이었는데, 항상 그런 날들 이었을 오늘이, 몇몇 사진들이 이유가 되어 이렇게 글을 쓰게 됐다. 그것이 무엇이냐하면, 하나는 영화제목을 캡쳐해놓은 사진 때문이었다. 기억난다, 보는 순간 이 영화 너무 재밌겠다며 캡쳐해두었는데. 중요했던 사진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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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가 심어주신 작은 씨앗쓰다 2016. 5. 26. 12:19
내가 어릴 적부터 꼬박 어머니가 해주시던 말. 너가 태어나자마자 할머니는 보통 아이가 아니라고 말하셨단다. 큰 사람이 될거라고 그랬어. 들을때마다 대수롭지 않게 여겼던 건 부모님들은 내 아이들에겐 곧잘 이런 이야기를 해주겠거니 싶어서였다. 하지만 엄마품에 안겨 잘때마다 들었던 이 말들이, 언제 심어졌을지 모를 씨앗이 되고 새싹으로 피어나 나무가 되어버렸다. 은연중에 나는 정말 큰 사람이 될 것 같은 묘한 기분에 휩싸였다.남들은 우스갯 소리로 들리겠지만, 내 왼쪽 팔 위에 위치한 흰 점들 중 위에 점은 우리나라 지도를 꼭 닮았다. 그리고 괜스레 이것이 어머니의 말을 뒷받침해주는 증거같았다.여러모로 운이 좋은 순간들이 많았고 묘하게 잘되고 있다고 느끼는 날들이 있었다. 돌이켜보면 항상 행복했고 너무나 좋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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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바지가 못견디게 싫었다쓰다 2016. 5. 3. 00:44
어릴적 초등학교 3학년에 들어갈 무렵그 나이에는 난 어머니 아버지와 함께했던 기억이 손에 꼽을 정도인데,이는 진짜 그때부터 우리가 함께 할 시간이 없었던 건지 아님 나의 기억의 시작이 그때부터였기에 그랬던건지는 모를일이였다여하튼 난 그때 하루의 2/3 가 혼자였다10살의 나에게 누군가가 가장 좋아하는 것을 묻느냐면 쇼파에 앉아서 티비를 보는 것이었고 가장 싫어하는 것을 묻는다면 그건 청바지였다. 그랬다. 엄마의 청바지가 못견디게 싫었다.하루는 싫어하는 청바지의 끝단을 부여잡고 아파트가 떠나가도록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그리고 남았던건 언제나, 작았던 등과 미약하게 남은 청바지의 온기였다.그렇게 나는 온기를 부여잡은채 소매로 두어번 눈가를 비비곤 다시 쇼파로 올라가 티비를 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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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먼 독일의 정원이야기쓰다 2016. 4. 27. 14:11
*는 하나로 머리를 질끈 묶어매고 등을 꼿꼿이 세운 채 강의를 듣고 있다. 수업 중 들려오는 저 먼 독일이야기.그들의 정원이야기. 아침-점심으로 잔디가 있는 정원에 나와 온갖 잼들과 빵을 먹으며 담소를 나눈다는 것.아침의 풀내를 맡으며 잼을 바른다. 덜그럭 커피 향내가 햇살 아래 아지랑이 피어오른다. 서늘한 아침의 온기가 감싸온다때마침 *의 강의실 창문 한켠으로 바람이 다가와 그녀의 잔머리를 훑고 지나간다. 흔적을 밟으며 움직이는 그녀의 시선 끝에 창 밖엔 솟은 산 위로 드넓은 하늘만이. 머무른 하늘은 마치 저 먼 독일이야기의 정원인 것만 같아서*는 비추는 햇살 아래 눈을 감고 정원의 풀내를 맡아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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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시위를 당기는 이는 나였다쓰다 2016. 4. 24. 02:47
욕심이라는 단어 속엔 책임감이라는게 꽤나 내포되있다. 내 욕심을 실현하기엔 의지와 추진력이 중요하다. 이 한걸음엔 큰 보폭이 있어야 하여 대부분은 이곳에서부터 큰 장애물을 맞이한다. 그리고 이 난관에 거친다면 내 욕심은 웃음을 드러낸다. 내게 다가오는 것인냥. 그리고 나는 허황된 연기가 되었음을 실감한다. 얄궃은 미소만이 남겨짐을 깨닫는다. 체력과 정신력은 이어지게 하는 동인이 된다. 마치 우린 기나긴 마라톤을 진행한다. 매번 욕심이 차고 넘쳤다. 이것 저것하고 싶은게 차고 넘쳤다. 품은 순간 생각들이 짐이 될거란 생각이란 하나도 못하고. 이것이 무시무시한 책임감을 몰고 온다는 것을 하나도 모르고. 욕심은 계속 됐고 난 지쳐갔다. 화살의 끝엔 내가 있다. 활시위를 당기는 이는 나였다. 존재의 양분화. 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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흰색의 미니 지도.쓰다 2016. 4. 4. 01:34
y씨가 맛있는 밥집을 한군데 소개해주었다. 길치인 나를 위해 손바닥만한 종이 한 장을 꺼내 지도를 그려줬다. 문을 나섰다_간단한 미니 지도 한 장 품에 안고- 지도 속 간판들을 거쳐 가게에 도착했다. 미니지도를 옆에 고이 놔두고 추천받은 메뉴를 시킨다. 몇 분 후 음식이 나오고, 젓가락을 들고, 호로록 한입 그득히 먹어본다. 두 입 세입. 배를 채우다가 문득 미니 지도가 눈에 뜨인다. 젓가락을 멈추고 바라보니 이 지도. 무언가 이상해졌다. 분명 y씨가 그려줄 때만 해도 흰색 깔끔한 지도 였는데. 흰 색 미니 지도가 주홍색으로 물들었다. 방금 먹은 국물이 몇방울 튀었나 보구나. 밥집 위치를 적어놓은 지도에, 밥집 내가 난다. 희한하다. 마치 시간을 초월한 지도처럼. 큼직 큼직한 간판 사이 사이로 사라져버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