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다
-
사진처럼 자르는 연습쓰다 2015. 10. 29. 05:05
귀찮다고 생각하는 일들을 전체로 보지 말고 하나하나씩 사진처럼 잘라서 생각하면 아주 아름다운 일이 되어버린다. 자르는 과정에서는 묘하게 바랜 필터를 씌우고 빛이 드리운다. 바늘을 꺼내 돌돌말린 검은 실을 풀어 살짝 침을 바르고 신중히 바늘구멍에 실을 꿰는 장면. 세세한 손주름 두실을 똑바로 맞추고 검지에 둥그렇게 돌려 쏙하고 매듭을 짓는 장면 똑하고 가위로 자르고 천에 깊숙히 찌른 바늘을 바라보는것 그행위에 집중하는 것. 하나의 장면으로 가닥가닥 보면 이 모든 것은 아름다운 것이 되어버린다
-
나의 사랑하는 사람들의 시간은 나보다 느렸으면 좋겠다고쓰다 2015. 10. 25. 23:50
오랜만에 언니랑 문자를 주고받다 언니가 사진 한장을 보내왔다. 우리 강아지 차차 사진이었다. 타지에서 자취를 하는 내게 보고싶을까싶어 매일 차차사진을 보내오기에 그런 매일 일상같은 사진이겠거니 하고 보았다. 손이 멈춰섰다. 이내 다시 다가가서 클릭해보았다. 울컥 하고 뜨거운 마그마가 솟구치듯 내 안에 응어리가 뜨겁게 퍼져나갔다. '많이 늙었지? 너무 속상해' 등부분부분 피어난 반점들은 말하지 않아도 내게 들려주었다. 2008년도 어느 여름에 와서 껑충껑충하고 뛰어오르다가 서서히 바닥으로 그렇게 장판마냥 바닥으로. 오랜만에 집에 가면 서로의 눈빛을 주고 받고 대화한다. '오랜만이야' '오랜만이지?' 어린시절 재롱부리듯 애교를 피우진 않아도 나를 한번 쳐다보고는 자신의 등을 내게 기대온다. 그럼 나는 익숙하..
-
찻장에서 먼지 쌓인 잔과 잔 받침대를 꺼낸다.쓰다 2015. 10. 16. 02:27
찻장에서 먼지 쌓인 잔과 잔 받침대를 꺼낸다. 물로 살짝 먼지를 씻겨낸다. 부엌에서 나와 네다리를 가진 탁자에 조심스레 올려놓는다. 적막 속에 덜그럭 소리가 울려 퍼진다. 오래도록 그 자리에 가구처럼 있는 커피포트. 물을 가득 담고는 on을 누른다. 물이 끓기까지 잠시 시간이 있으니 여유롭게 그렇게. 작년 이맘때쯤 집들이 선물로 받았던 티백을 찾는다. 서랍을 몇 번 뒤적이다, 책상 위에 놓인 상자가 유독 눈에 띈다. 반신반의한 마음으로 상자를 열어보니 역시나. 종이봉투에 싸여진 티백이 흐릿하게 보인다. 부시럭-. 하나를 꺼내 실과 종이를 살짝 뜯곤 덜그럭 잔에-10분전부터 붙여진 잔의 이름- 미끄러지듯 넣는다. 때마침 커피포트의 수증기가 천천히 올라온다. Off 보글보글. 혹시라도 실수할까 싶어 손잡이를..
-
새벽 두시 나지막하게 들리는 자취방 속 기타 선율.쓰다 2015. 9. 17. 03:32
새벽 두시 나지막하게 들리는 자취방 속 기타 선율. 고작 6개의 줄은 둘의 새벽을 선홍빛으로 물들인다. 숨소리보단 거칠게. 음을 따라 공기를 따라. 나는 연필을 붙잡고, 너는 책상 앞 기타에 몸을 맞대고. 보이지 않는 리듬은 우리와 줄다리기를 한다. 저기로 흔들, 이곳으로 흔들, 이불 안에 발가락은 올라갔다 내려갔다. 손가락 살로 뭉댄 줄마냥 올라갔다 내려갔다. 우리의 가슴 속 하나 씩 있는 줄에 따라 너를 움직이게 하고, 나를 움직이게 했다. 우리를 하나로 만들었다. 우리의 마음 속 기타 한 줄에 따라. 9월 17일, 오전 3:31분
-
나른한 오후를 보낸다쓰다 2015. 9. 15. 21:27
두 손바닥을 합쳐도 조금 더 커다랗다. 그래서 반으로 접고 약간 둥그렇게 모아 손바닥으로 쥐어본다. 아슬아슬 손바닥을 튈 듯한 종이들이. 마치 튀어 오르는 검은 색 활자 같다. 눈이 좋지 않은 탓에 깊게 코를 박으니, 오래된 종이냄새가 나는 듯하다. 인쇄된 종이에서 괜스레 스며든 작가의 체취가 퍽 다정하다. 구월의 햇살이 나뭇잎 사이로 반 틈 드리운다. 빛은 문장의 몇 글자를 밝혀온다. ‘내게 효과가 있는 다만 하나의 강장제는 따스한 햇볕이요, ‘토닉’이 되는 것은 흙냄새이다.’ 사이사이 나열된 문장들이, 일광욕을 즐기듯/ 드리운 햇살아래 종이를 바닥 삼아 누워있다. 나른하다. 그들은 나른한 오후를 보낸다. 나도 따라, 엄지로 한 자 한자. 어루만져 본다, 나도 따라, 그들의 옆에 누워본다. 나도 따라,..
-
그리고 일주일이 지난 지금 우린쓰다 2015. 9. 15. 21:26
그리고 일주일이 지난 지금 우린 벌써 과거가 되어버린 그 날을 회상하며 맥주를 들이킨다. 이제 제법 밤공기는 쌀쌀해졌고, 으슬으슬 추웠지만 나쁘지만은 않아서 그냥 이대로 좀 더 이 밤을 간직하고 싶었다. 물 흐르듯 이어지는 대화 속에 자연스레 그 때의 내 마음을 꺼내 보였다. 4일을 1/4로 쪼개 그리고 다시 1/4를 조각 조각 쪼개어 순간의 조각들 속 나는 어땠는지 그리고 더 나아가 넌 어땠는지. 얘기해보고 싶었다. 실제로 우리는 상대방을 다 알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실은 아직도 - 그들 조차 평생을 함께한 자신을 온전히 이해하기란 어려우니까. 그렇기에 오늘 밤 자연스럽게 나온 대화들은 다소 놀라웠고, 미안했으며 고마웠다. 생각보다 넌 나를 생각해줬고, 생각보다 나는 너를 몰랐구나. 마음에 은근히 담아..